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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디미방(일명 閨壼是議方)

작성일
2016.03.06 14:06
등록자
안수연
조회수
1688

    이 표는 분류, 소재지, 지정번호, 연대, 규모,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분류 민속분야 > 기록유산
    소재지 (36560)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길 66
    지정번호
    연대 조선시대
    규모
    내용 장계향의 생애와 삶에 대해서는 셋째아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쓴 「행실기(行實記)」에 구체적인 실례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행실기」에 따르면 장계향은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교육자이자 사회를 위한 봉사정신도 남달랐다. 게다가 유학자의 딸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시서화(詩書畵)에 능하였다는 것이 남겨진 그의 작품으로 확인된다.
    장계향이 쓴 <음식디미방>은 세계 최초의 한글조리서이며, 여성이 쓴 한국 최초의 조리서이다. 한국의 조리서 가운데서 전순의의 <산가요록(山家要錄)>, 김유의 <수운잡방(需雲雜方)>,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 이어서 한국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조리서이다. <음식디미방>이 저술된 시기는 그의 노년기에 해당하는 17세기 말경이다. 그 당시 안동, 영덕, 영양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경북 북부권의 조리 실상이 소상하게 담겨 있다. 두드러진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음식 조리에 고춧가루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개고기와 꿩고기 조리법이 많다는 점, 찌거나 구운 재료에 걸쭉한 즙을 끼얹은 ‘느르미’라는 음식이 많았다는 점, 일상음식보다는 접빈음식이 중심이라는 점 등이다.
    <음식디미방>은 모두 146항을 수록하고 있는데, 4개 영역으로 나뉘어서 편성하고 있다. 즉, ①면병류 18항(조과류 6항 포함), ②어육류 46항(면류 3항, 조과류 6항, 채소류 19항 포함), ③주국방문 51항, ④식초 담는법 3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은 조리서 저술의 의도와 심경에 대하여, “이 책을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벗겨 가오되 이 책 가져갈 생각을 하지 말며 부디 상치 말게 간수하여 수이 떨어버리지 말라”고 당부를 겸하여 적고 있다. 노년에 힘겹게 <음식디미방>을 저술했다는 점, 자손들이 저술의 의도를 헤아려 수록된 내용을 잘 실천해달라고 한 점, 책을 소중히 관리하며 사용하되 특히 딸자식들은 빌려가지 말고 복사해서 사용하라고 한 점 등이 드러나고 있다. 적어도 음식을 통하여 가풍을 전승하고,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또한 장계향은 여성 나름의 실용적인 학문관이 발동하여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였다. 장계향은 명유의 집에서 태어나 일정한 수준의 한학과 유학 교육을 받았지만, 그것은 여성으로서 일생동안 계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부덕(婦德)을 함양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덕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집필된 <음식디미방>이야말로 실용적 경험지식을 체계화 한 점, 한글로 써서 널리 활용되도록 한 점에서 여성에 의한 한국 최초의 실학적 저술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장계향은 음식과 술을 유가들이 중시하였던 예(禮)의 실천 차원에서 접근하여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장계향은 남편 이시명이 병자호란 이후 삶의 의욕을 잃고 은둔생활을 할 때 <시경>과 <예기>를 거론하면서 자식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예기> 예운(禮運) 제9에는 “대저 예의 시작은 음식에 기원하는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 점에서 음식과 술을 예의 실천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가치를 가진 <음식디미방>에 대해서 경상북도는 2014년부터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음식디미방>것은 17세기 말에 양반가 부인이 섬세한 감각으로 음식 조리에 관하여 한글로 소상하게 기술했다는 사실을 넘어서는 한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경북 북부 양반가에서 이런 조리서를 저술하였는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줄 수 있다. 첫째,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향촌사회 보급과 정착에 따라서 술과 음식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형성되면서 음식조리서가 저술되었다. 술과 음식이 양반들의 지위와 권력 실천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경북 북부를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 16, 17세기 농업생산성의 발달에 따라 주요 식재료인 농산물을 종전보다 더 쉽게 마련하게 되면서 음식조리서가 저술되었다.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북북부는 산이 많고 들이 좁지만 인구는 많아서 이앙법과 도맥이작(稻麥二作) 같은 선진 농업기술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음식디미방보존회는 2006년 6월에 결성되었다. 이 보존회는 세계적인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홍보하고, 그 조리서 속에 나오는 음식을 복원 재현하여, 보급하기 위해서 결성되었다. 음식디미방보존회는 영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주도하여 만든 우리음식연구회의 활동에서부터 싹을 튀운 것이라고 하겠다.
    초대회장은 황분선 씨(1955년생)로 그는 우리음식연구회 회원이었다. 2016년 현재 회장은 신옥화(1948년생) 씨이다. 2010년부터는 석계 이시명 종가의 조귀분 종부가 음식디미방보존회와 음식디미방 체험관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존회 회원은 초기에 20여명이었고, 2016년 현재도 23명 내외이다.
    지금 음식디미방보존회는 장씨부인 예절관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주된 활동 공간은 영양군에서 설립한 ‘음식디미방 체험관’이다. 여기서 보존회원들은 <음식디미방>에 수록된 음식을 재현하여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본래 이 조리서에 수록된 음식을 처음으로 황혜성 교수가 처음으로 40여 가지를 미리 고증 복원하였는데, 이를 참조하여 보존회원들이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이 보존회는 영양군에서 여는 산나물축제, 고추축제, 유교축제, 김장축제 등과 같은 큰 행사에 참여하여 <음식디미방> 음식을 재현하여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참고자료>
    배영동, 「《음식디미방》에 나타난 술의 다양성과 그 사회적 의미」, <문화재>, 제34호, 국립문 화재연구소, 2001.
    -----, 「종가의 사당을 통해본 조상관」, <한국민속학>, 제39집, 한국민속학회, 2004.
    -----, 「《음식디미방》 저자 실명 ‘장계향(張桂香)’의 고증과 의의」, <실천민속학 연구>, 제 19호, 실천민속학회, 2012.
    -----, “정부인 안동장씨 이름 ‘장계향’, 이렇게 찾았다”, <유교 이야기>, 제24호, 세계유교 문화재단, 2013년 10월호.
    -----, 「16~17세기 안동문화권 음식조리서의 등장 배경과 역사적 의의 - <수운잡방>과 <음 식디미방>의 사례-」, <남도민속연구>, 제29집, 남도민속학회, 2014.
    백두현, <음식디미방 주해>, 글누림,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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