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
~
1940

문학소년,지훈

Jihun's biography

유교적 전통 속에서 서양문학을 섭렵하다.

지훈은 아홉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동화를 창작해 보기도 하고, 당시의 소년들로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피터 팬」,「파랑새」,「행복한 왕자」와 같은 동화를 읽으면서 서구의 문화를 경접하였다.

습작기(1936)~1939)

유교적 전통 속에서 서양문학을 섭렵하다.

열일곱 살 때 처음 상경하여 나는 동향의 선배 오일도 사백의 '시원사'에 머무르고 있었다. 상경 후 내가 처음 탐독한 시인은 보들레르와 와일드였다. 사실주의 이후 주조 잃은 문예사조를 알아본다고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ㆍ플로베르를 읽고 나서 보들레르의 상징주의가 정통이라고 믿은 것도, 와일드의 탐미주의에 혹하여 「살로메」를 번역하여 본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나는 이내 그 당시의 모든 문학청년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1차 대전 전후의 소위 아방가르드 문학에 열중하기도 하였다.

쉬르니 다다니 포멀이니 하던 그 날의 나의 습작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으나 이한 때의 섭렵은 나의 시 공부에 무익한 것은 아니었다. 이때에 초록해 두었던 그러한 시론은 동란 직전까지도 나의 서랍 속에 고운 색실로 꿰매어 있었다. 그러나어쩐 일인지 이러한 첨단문학은 나의 구미에 잘 당겨지지를 않았다.

어린시절 조지훈 사진

대학생때의 조지훈 모습

상경한 지훈, 서구 심미주의의 영향을 받다

지훈은 상경하면서 동향 선배인 시인 오일도를 만나 그가 주관한 시원사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극예술연구회, 중앙무대, 낭만좌와 조선어학회에 드나들면서 많은 선배 문인, 예술인, 학자들을 만났다.등단하기 전 습작들이 「백지」동인지에 실렸는데 1집에 실린 「계산표」와 「귀곡지」에 대하여 당시 소설로 문명을 떨치던 유진오 선생이 "혜민(慧敏)한 지성(知性)을 산다"고 평을 써 줘서 은근히 기뻐했다고 한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와세다 대학교 통신강의록으로 공부해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입학한 지훈에게 「백지」의 동인들과 벌인 토론은 지식과 정보의 교화 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시기 지훈은 체질화된 동양적 사상에다 서구적 자의식과 탐미주의 세계관을 접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