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파(靑鹿派) 시인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인이고 국문학자였던 조지훈(1920~1968)과 그의 형 조세림이 태어난 곳이다. 주실마을 한복판에 있으며, 조선 중기 인조조에 입향조인 조전의 둘째 아들 정형(廷珩)이 창건했다.이 집은 경상도 북부 지방의 전형적인 양반가(兩班家)의 모습을 하고 있는 'ㅁ'자형 집으로 정침(正寢)과 대문채로 나누어진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7칸이며 정면의 사랑채는 정자 형식으로 되어 있고 서쪽에는 선생의 태실(胎室)이 있다.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고 솟을대문이 있다. 6·25전쟁 당시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1963년 복구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英祖) 49년(1773)에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隣, 1658~1737)의 손자인 월하(月下) 조운도(趙運道, 1718~1796)가 발의하고 한양조씨(漢陽趙氏), 야성정씨(野城鄭氏), 함양오씨(咸陽吳氏)등이 추축이 되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이 서당에서 공부한 이들 가운데 많은 석학(碩學)과 명현(名賢)들이 배출되었다. 한양조씨는 원래 영양에 입향한 후 원당리(原糖里: 영양읍 하원동)에 살다가 호은공 조전(壺隱公 趙佺)선생이 주곡동으로 옮겨간 뒤 자손이 번성하고 벼슬과 학문이 끊이지 않았으며 호은선생의 아들
호은선생의 아들 정형(廷珩)선생은 1630년(인조8年)에 진사하고, 증손 호봉(壺峯) 덕순(德純)선생과, 옥천(玉川) 덕린(德?)선생의 형제가 숙종조에 대과하여 호봉은 문과에 장원하여 벼슬이 지평에 이르렀고, 옥천은 승지로서 성학과 문장으로 당시 남인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그러나 옥천 선생의 손자 월하(月下) 조운도(趙運道) 선생과 만곡(晩谷) 조술도(趙述道)선생이 서당이 없어 학자의 수업에 지장이 있음을 크게 개탄하고 월록서당을 영건하게 되었다. 월록서당은 영산서당을 서원으로 승격한 후 서당으로서 본군에서는 처음이며, 일월산록에 간좌곤향(艮坐坤向)으로 위치가 한적하고 집이 4칸 겹집으로 넓고, 앞으로는 장군천이 남쪽으로 흘러 서당 앞을 돌아서 낙동강의 원류를 이루었으며, 주봉인 일월산이 뻗어내려 만장광경(萬丈光景)을 이루었으니 그 전망(展望)이 화려하며 수석(水石)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유생들이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앞으로는 독산과 멀리는 흥림산이 안대(眼帶)를 이루고 있다. 서당의 중간은 마루이고 양쪽이 방인데, 왼쪽은 존성재(存省齋), 오른편은 극복재(克復齋)라는 편액이 불어 있으며,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의 서당기와 천사 김종덕(川沙 金宗德)과 간옹 이헌경(艮翁 李獻慶)의 시판이 새겨져 있다. 이 서당은 월하와 만곡을 위시하여 향내 후진양성은 물론 동남문풍의 중심이 되었다. 서당의 현판은 숙종조 영의정인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선생의 친필이다.
이 집은 한양 조씨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고택으로, 17세기 말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덕린은 조선 숙종 17년(1671)에 문과에 급제하고 교리(校理)와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역임하였다.이 집의 구조는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글을 읽는 별당(別堂)인 초당(草堂)과 가묘(家廟)인 사당(祠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림채는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ㅁ'자형 뜰집의 전형적인 구성을 보이는데 다만 안방이 동쪽에 오고 사랑방이 서쪽으로 배치된 점만이 다르다. 집의 평면구성에 좌우가 바뀐 이 같은 형식은 18세기부터 안방과 부엌이 서쪽으로 배치되는 평면 구성으로 통일되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 살림집은 지붕을 박공(牔栱)으로 처리하는 등 상당히 오래된 건축기법을 간직하고 있다. 초당은 전형적인 서당의 평면 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사당은 18세기 말 건물로서 일반적인 형식에 속한다.
주실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
- 지훈시공원 호은종택에서 지훈문학관으로 가는 길에, 지훈시공원이 있다. 지훈의 詩 가운데 골라 뽑은 20여 편이 돌에 새겨져 있으며, 쉴 수 있는 쉽터와 자그마한 공연장이 있다. 한 작품씩 음미하며 나무계단을 따라가다보면 아늑한 산세가 편안한 기운을 복돋운다.
- 시인의 숲 주실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보호숲, 외부로부터 마을로 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조지훈의 시 <빛을 찾아 가는 길>을 새긴 시비가 있고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물한살에 요절한 그의 형 세림 조동진의 시비가 있다.
- 문필봉 호은종택의 대문을 등지고 정면을 바라보면 있는 정삼각형의 봉우리, 풍수가에서는 문필봉이 정면에 있으면 공부를 잘하는 학자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주실마을의 집들도 대부분 이 문필봉을 마주하고 있다.
- 지훈광장 지훈문학관 앞에 각종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무대와 휴식공간이 있어 자유로운 문학토론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