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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취 가득한

두들마을 문화재

  • 석계고택(石溪古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

    조선 인조(仁祖)와 현종(顯宗) 때의 학자인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이 인조 18년(1640)에 세운 고택이다. 석계선생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張興孝)의 문인으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이곳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선생의 부인인 정부인(貞夫人) 장씨는 부덕(婦德)과 학문을 갖춘 인물로 신사임당(申師任堂)에 비견(比肩)되는 분으로 이문열 장편소설 [선택]의 주인공이 되었고, 아들인 이조판서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은 퇴계 이황의 영남학파를 계승하였다. 이 집은‘一'자형 사랑채와 안채를 ‘二'자형으로 배치하고 토담으로 막아 허실감(虛失感)을 메운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 '왕에게 보내는 편지', '오즉 진군할 따름이다!' 등이 있고, 이외에도 '희야곡', '오월의 마음', '소녀', '이병각 시집' 등이 있다.특히 '이병각 시집'은 1941년 후두결핵으로 요절하기 전 병든 몸으로 직업 한지에다 모필로 시집을 묶어 만든 것으로 자신의 심정을 진솔하게 묻어내는 서정시로 엮어져 있다.

  • 석천서당(石川書堂)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9호

    이 서당은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 선생이 영해에서 석보로 이사와 세운 석계초당을 후손들과 유림이 중건하여 석천서당(石川書堂)이 되었다. 선생은 퇴계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張興孝)의 문인이며, 영남학파를 이은 이조판서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의 부친이다. 이 서당은 두들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남서향으로 향하고 있는데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좌측에서 첫째와 넷째 칸은 통칸방으로 꾸몄고 둘째와 셋째 칸은 마루를 깔았다. 정면과 좌우면에 2자의 쪽마루를 내어 평난간을 둘렀고, 마루로 향하게 한 창호는 4분합의 들어 열개문으로 하여 6칸을 1칸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 주곡고택(做谷古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4호

    조선중기 유학자인 주곡 이도(做谷 李櫂, 1636~1712)공이 주남리에 건립하였던 것을 후손들이 순조(1830)에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ㅁ’자 구조의 이 집에는 수장 공간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산지 마을의 특성이 곡식의 저장성을 중요시 한 것으로 보인다.

  • 유우당(惟于堂)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85호

    조선 순조 33년(1833)에 이상도(李相度, 1773~1853)이 주남리에 세운 집으로 구한말 후손인 파리장서사건에 가담한 이돈호(李墩浩)가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항일 시인 이병각의 집이기도 한 이집은 당초 ‘ㅁ'자 형태였으나 이후 기능이 부가되어 ‘날개집'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사대부들의 예학(禮學)사상과 엄격함, 그리고 도덕성을 느낄수 있는 고택이다.

  • 남악정(南岳亭)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80 호

    “남악”이란 명칭은 석보면 주남리늬 고지명 “남악곡"에서 따온 명칭이다.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 1627~1704)선생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던 곳으로 현종 15년(1674)에 건립되고, 순조 22년(1882)에 중건되었다. 기사년(1689) 성균관 사업(司業)의명과 갑술년(1694)유배의 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사주문의 현판 홍도문(弘道門)은 숙종의 어필이고, 갈암선생의 문집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 광록정(廣麓停)

    항재 이숭일(恒齋 李嵩逸) 선생이 강학하였던 곳으로 퇴락하여 고종 21년(1884) 유생과 후손들에 의해 중건되었다. 초당에는 선생의 원운(原韻)과 산택재의 차운이 있으며, 좌해 이수영(左海 李秀榮)의 추건기(追建記)등이 있다.

두들마을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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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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