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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현의 기틀을 마련한

정영방

정영방(鄭榮邦, 1577~1650)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보(慶輔), 호는 석문(石門). 홍문시독(弘文侍讀) 정환(鄭渙)의 현손으로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어났으나, 뒤에 입암면 연당리로 이주하였다.

1599년(선조 32년) 정경세(鄭經世)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예천에서 강학으로 소일할 때 그가 먼저 수학했으며 이후 학문정진하여 용학(庸學)과 경전에 통달했다. 1605년(선조 38)에 성균 진사가 되었으며, 정경세가 그의 학문을 아깝게 여겨 천거하였으나 광해군의 실정(失政)과 당파싸움에 회의를 느껴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이후 국사가 어지러워 입압면 연당리로 이주하여 산자수명한 자연을 벗삼아 소요자적하였다.

그는 이 곳에 연못을 파고 서석지(瑞石池)라 이름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이 연못을 오늘날 영양서석지(英陽瑞石池)라 하며 정자와 함께 중요민속자료 제108호이다. 그는 영양이 폐현되었을 때 1633년에 복현을 위한 상소를 올려 영양현이 복현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 서석지의 봄
  • 서석지의 여름
  • 서석지의 가을
  • 서석지의 겨울

정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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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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