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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강 구곡(曲江 九曲) 제9곡 ‘강촌(江村)’

작성일
2019.05.16 11:38
등록자
관리자
조회수
207
첨부파일(1)
제9곡 강촌.jpg
▶ 이 글은 향후 출판물 발간을 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무단 발췌를 불허합니다.

오늘은 동성(東城) 금소술(琴韶述, 1834~1890)이 지은 '곡강 구곡(曲江 九曲)' 중에서 마지막인 제9곡 ‘강촌(江村)’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월산에 대한 좋은 시를 한 편 함께 감상하고자 우연히 시작한 글에서 지난 2달간 9곡 모두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제 마무리를 하게 되었네요.

‘강촌’은 ‘강가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명으로 볼 때 ‘강촌’은 하천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물길인 ‘강(江)’에 인접한 마을을 의미합니다. ‘강’보다 규모가 작은 물길은 ‘천(川)’이라고 하며, ‘천’보다 작은 규모의 물길은 ‘개울[溪]’ 혹은 ‘도랑[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곡강은 ‘장군천(將軍川)’에 인접한 마을이기에 정확히 말하면 ‘천촌(川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동성 선생은 ‘천촌’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강촌’이라고 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한자와 한글 간에 동음이의(同音異義) 현상에 의한 것입니다. 즉, 한글의 ‘천’은 하천을 뜻하는 한자의 ‘천(川)’은 물론 천민을 뜻하는 ‘천(賤)’과 같은 음을 갖고 있어 꺼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하천은 본래보다 한 단계 높여서 부르는 존양의 풍습과 유교 이념의 작용 등에 의해서 ‘천(川)’은 희소하고 ‘강(江)’과 ‘계(溪)’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더불어 ‘강(江)’의 경우에는 마을의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지명인 반면, ‘계(溪)’의 경우에는 마을의 인문적 특성을 반영한 지명입니다. 즉, 마을의 지명에 있어서 ‘계’의 경우에는 지역에서 소위 반촌이거나, 뛰어난 인물이 태어나거나 혹은 활동했던 마을에서만 붙일 수 있었습니다.

곡강과 같이 ‘반변천’의 본류에 입지하고 있는 마을 중에서도 영양남씨가 세거한 일월면 섬촌의 경우 ‘섬계(剡溪)’, 한양조씨가 세거한 일월면 도계의 경우 ‘도계(道溪)’, 함양오씨가 세거한 영양읍 대천의 경우 ‘용계(龍溪)’ 등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곡강의 경우 18세기 중엽에 동성 선생의 선조인 봉화금씨가 입향했지만 영양의 유력 가문에 비해서 한미했고, 한양조씨인 망운(望雲) 조홍복(趙弘復,1773∼1841) 선생 역시 정자를 지어 잠시 우거하였을 뿐임으로 마을의 하천을 ‘-계’라는 별칭으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卜居雲壑別區開 구름낀 골짜기에 자리를 잡아 별세계가 열리니
九曲江村抱水洄 9곡 강마을은 휘도는 물을 안았구나.

洞口將軍行馬縶 마을입구의 장군천은 가는 말을 붙들고
山顔女妓去人媒 앞산 여기봉은 가는 사람을 이끄는구나.

風淸古韻聽園竹 바람은 선선하여 예스러운 운치에 원죽소리 듣고
雨過新粧咏雪梅 비가 지난 뒤 새단장하고 설매를 노래하는구나.

投杖歸來泉石上 지팡이를 던지고 석천 위로 돌아오니
箇中不換好瓊瑰 그 어느 것도 좋은 옥구슬과 바꾸지 않으리라.

담당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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