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곡강 구곡(曲江 九曲) 제8곡 ‘당진(唐津)’

작성일
2019.05.09 11:41
등록자
관리자
조회수
188
첨부파일(1)
제8곡 당진.jpg
▶ 이 글은 향후 출판물 발간을 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무단 발췌를 불허합니다.

오늘은 동성(東城) 금소술(琴韶述, 1834~1890)이 지은 '곡강 구곡(曲江 九曲)' 중에서 제8곡인 ‘당진(唐津)’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동성 선생은 곡강의 9곡 중에서 8곡은 ‘당진(唐津)’이라고 하였는데, ‘당진’은 제6곡인 ‘구암’ 아래에는 있는 마을의 지명입니다. 현재 일월면 곡강리 당진으로 마을의 지명이 특이하게 ‘당나라의 나루’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동성 선생은 마을의 지명에 대해서 ‘예부터 당나라의 풍속이 있어서 마을의 이름을 당진이라고 하였다[古有唐俗之風故名其洞曰唐津也]’라고 ‘곡강기(曲江記)’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영양군지』에 의하면 약 200년 전에 ‘한씨(韓氏)’라는 분이 마을에서 수호신을 모시는 당나무를 심은 뒤부터 ‘당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당나무를 심은 ‘한씨’라는 분은 사망 후 마을의 수호신으로 함께 모셔지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정묘생 한공(丁卯生 韓公)’으로 불립니다. ‘한공’에 대한 생애의 묘사가 구체적이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는 점에서 약 200년 전에 당나무를 심었던 ‘정묘생 한공’이라면 1747년(정묘)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당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당진(唐津)’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당나무와 관련된 지명이라면 ‘당진(唐津)’이 아니라 ‘당진(堂津)’으로 불러야 합니다. 마을에서 당나무와 관련해서 ‘당진(堂津)’이라고 구두로서 부르던 것이 전승 과정에서 ‘당진(唐津)’으로 오기된 것일까요?

다행스럽게도 ‘한공’이 태어나기 전에 마을을 지나다닌 주강(柱江) 조시광(趙是光, 1669∼1740) 선생이 남긴 『주강문집(柱江文集)』에서 당시 지명을 알 수 있습니다. 주강 선생은 ‘척금대(滌襟臺)’라는 한시에 ‘당진수 아래 높이 수백 척(唐津水下高數百尺)’라고 기록해 놓음으로써 당나무를 심기 이전부터 ‘당진(唐津)’으로 불렸음이 확인됩니다.

따라서 ‘당진(唐津)’이라는 지명은 동성 선생이 설명한 바와 같이 ‘당나라의 풍속’이 남아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불렸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신빙성이 높습니다. 언어풍습에서 ‘당(唐)’자가 ‘당나라’를 뜻하는 글자라면, ‘진(津)’은 보편적으로 배가 정박하는 ‘나루’를 뜻하는 글자입니다.

‘당진(唐津)’에서 ‘진(津)’이 나루를 뜻하는 것임은 이곳을 읊은 시에 나룻배가 등장하는 것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룻배가 오고갔던 ‘당진’에 대해 동성 선생은 무엇을 읊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携笻步步碧江邊 지팡이 짚고 푸른 강변을 거니니
八曲唐津白鷺眠 8곡 당진에 백로가 잠자는구나.

​虎嘯風寒吐水谷 호랑이가 토수골의 풍한에 울부짖고
鳥驚月掛大淸淵 새는 대청소에 걸린 달보고 놀라는구나.

當今勿謂箇中趣 이제 어느 것을 얻는다고 말하지 말고
終古得來世外傳 영원히 얻어서 세상 밖에 전하는구나.

自是一方多勝絶 이곳에 있는 많은 절경은
翠屛簇簇別靑夭 푸른 병풍이 빽빽하고 하늘이 특히 푸르구나.​

담당부서
  • 조회수 6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