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인물

이재

작성일
2018.03.27 14:10
등록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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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8년(1657)~영조6년(1730). 갈암 이현일의 셋째아들이며 휘는 재(栽)요, 자는 유재(幼材), 호는 밀암(密庵)

소년이 되기 전에 소학, 논어, 좌전에 이미 통했으며, 스스로 자경문(自警文)을 짓기도 하였다. 조모인 장계향선생은는 <童子己向學 可成儒者眞>이라 하여 시를 지어 칭찬하였으며 항재 이숭일의 가르침에 따라 태극도설, 중용장구, 의례등을 섭렵하였다.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으로 함경도 종성, 전남 광양으로 이배되었고, 숙종 26년(1700)에 안동 금양으로 옮기자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들어 이때부터 가르치는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숙종 30년(1704)에 갈암 이현일이 별세하자 가전을 편집하고 남긴 글들을 모아 금수기문(錦水記文)이라고 하였다.

영조 4년(1728)에 조정에서 장악원 주부에 제수하고 부임할 것을 재촉했으나 노병이 심하고 또 선친(文敬公)에 대한 모함이 풀리지 않았음을 들어 부임하지 않았으며 이듬해 다시 부임하라는 명령이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선생은 성리학의 이(理)와 기(氣)에 대해서 이(理)만 이야기하고 기(氣)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맹자가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性善說)고 하는 뜻에 스스로 부합할 것이라고 하고 그 근본을 추구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 주리설(主理說)의 학맥은 갈암→밀암→대산(大山, 李象靖, 1711~1781)→ 정재(定齋 : 柳致明, 1777~1861)로 계승된다. 저서로 안증전서, 주서강록간보, 주전집람 그리고 밀암선생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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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업데이트
2018.03.27